영적 갈급함

김신조목사의 소천

덕강 2025. 4. 13. 11:30

김신조 목사는 북한의 무장공비로 남파되어 청와대 습격 작전에 참여했던 인물로, 이후 귀순하여 목회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생애는 극적인 전환을 보여주는 사례로, 회심의 동기와 그 이후의 활동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생애와 활동

김신조 목사는 194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18세부터 군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정찰총국 124군 소속으로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목표로 한 청와대 습격 작전에 참여하였으며, 이른바 '1·21 사태'로 알려진 사건에서 유일하게 생포된 인물이었습니다. 체포 당시 그는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는 발언으로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들  31명이 북악산을 넘어와 청와대를 습격하여 박정희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하였습니다. 다른 공비들이 사살당하던 와중에 김신조는 검문을 피하기 위해 독립가옥에 숨어서 무기와 장비를 모두 드보크에 묻어 두고 자폭용 수류탄 한 발만 들고 있었습니다. 이후 1월 22일 새벽 2시 25분에 제30사단 92연대의 잠정 1개 중대와 5분 대기조가 인왕산 하단의 세검정 계곡에 있던 독립가옥에서 김신조를 발견하였고 상당한 교전을 주고받다가 군에서 "나오면 살려준다"고 회유하니 결국 김신조는 수류탄을 들고 나왔습니다. 04시 15분경 김신조를 인계받은 방첩대는 그를 보자마자 '무기는 어디에 숨겨뒀냐?'고 물었고 김신조의 직접 안내로 특공대원 25명은 전날 김신조가 매복했던 비봉 승가사 옆 200미터 지점에서 드보크를 찾아 침투 시의 일부 장비를 회수하였습니다.  이후에도 김신조는 정보 제공 등의 방법으로 공비 소탕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당시 일당들은 모두 사살되었고 두사람은 탈출하였고 김신조 1명은 투항한 것입니다. 

 

 

귀순 후, 그는 대한민국 정부에 북한의 군사 정보 등을 제공하였고, 이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2022년 인터뷰에 의하면 김신조의 아내가 기사를 읽고 김신조에 첫눈에 반해 성경 구절이 쓰여진 편지를 김신조에게 보냈고 그 일로 결혼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배우자의 이름은 최정화이고 아들 김성환, 딸 김남희가 있습니다. 1996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고 서울성락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안보 관련 강연과 방송 인터뷰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2010년에는 한나라당 북한 인권 및 탈북자·납북자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김재현으로 개명하였지만 모두들 그를 김신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로의 회심 동기

김신조 목사의 회심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는 남한에서의 생활을 통해 자유와 신앙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으며, 특히 아내의 권유로 1981년 서울성락교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서울침례회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1997년 목사 안수를 받아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교훈과 유산

김신조 목사의 삶은 극적인 전환과 회심의 사례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지 않고 공개하며, 회개와 용서, 그리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간증은 많은 이들에게 신앙의 깊이를 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의 삶은 회심과 구원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사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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