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갈급함

조지 포먼의 회심

덕강 2025. 4. 12. 15:21

조지 포먼(George Foreman)은 단순한 복싱 챔피언을 넘어, 극적인 회심과 신앙을 통해 삶의 방향을 전환한 인물이다. 지난 3월달에 76세로 소천했는데 그의 일생은 스포츠, 신앙, 공동체 봉사를 아우르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복싱 챔피언으로서의 시작

1949년 텍사스 마셜에서 태어난 포먼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청소년 시절에는 폭력과 범죄에 연루되기도 했으나, Job Corps 프로그램을 통해 권투를 접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1973년에는 조 프레이저를 2라운드 KO로 꺾고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러나 1974년 7월30일 아프리카의 자이르(현, 콩고)에서 열린  무하마드 알리와의 '정글의 대난투'에서 패배하며 타이틀을 잃었다. 객관적인 전력은 조지 포먼이 우세했으나, 무하마드는 빠른 몸동작으로 포먼의 펀치를 피하면서 계속 지치게 만들었고, 5라운드 이상을 뛰어본 경험이 없던 포먼은 결국 지치게 되어 8회에 KO패를 당했다. 조지 포먼의 생애 첫 패배였다. 당시 흑백TV로 이 장면을 본것 같기도. ㅎㅎ

 


✝️ 회심 사건과 신앙의 전환

1977년 푸에르토리코에서 지미 영과의 경기 후, 포먼은 탈진과 열중증으로 라커룸에서 쓰러졌다. 심장마비였다. 그는 이때 임사 체험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계신다"고 외쳤고, 이를 계기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

포먼은 지미 영과의 시합 후 그날 밤 그 탈의실에서 죽었지만, 포먼은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셨다고 말했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바다로 떨어뜨린 것처럼. 망망대해처럼 땅이 없었다. 그 순간, 포먼은 "나는 여전히 신이 있다고 믿는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갑자기, "손이 뻗어 나와 나를 죽음에서 끌어냈다." 

이런 경험 후 그는 복싱을 은퇴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후 1980년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설립하여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목회자와 공동체 봉사자

포먼은 목회자로서 지역사회에 헌신했다. 1984년에는 '조지 포먼 청소년 및 커뮤니티 센터'를 설립하여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스포츠와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설교에서 권투 비유를 활용하며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설파했다 .​


🥇 복귀와 최고령 챔피언

재정적인 어려움과 청소년 센터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해 포먼은 1987년, 38세의 나이에 복싱에 복귀했다. 1994년, 45세의 나이로 마이클 무어러를 10라운드 KO로 꺾고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며 최고령 챔피언 기록을 세웠다. 그는 이 복귀를 통해 신앙의 힘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한 증거를 보여주었다 .​


📚 유산과 영향력

포먼은 복싱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조지 포먼 그릴'이라는 건강 조리기구를 출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자서전과 전기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널리 알렸다. 그는 "예수를 아는 것이 명성보다 더 중요하다"며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한달여전인  2025년 3월 21일, 76세의 나이로 별세한 그는 복싱계의 전설이자 신앙인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통산 76숭(68 KO) 5패의 복싱의 전설 조지 포먼은 시편 1장 1절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아니하며”을 평생 가슴에 두고 살아왔다.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실패하는 이유는 실수 때문이라기보다 시도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링에서 얻어맞고 쓰러지더라도 다시 당당하게 일어서라.”
 
​그는 링위의 영웅이었을 뿐 아니라, 복음의 영웅이었고, 영적인 영웅이었다.